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
曲 Gustav Mahler
詩 Friedrich Rückert
Accentus Chamber Choir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Mit der ich sonst viele Zeit verdorben;
Sie hat so lange nichts von mir vernommen,
Sie mag wohl glauben, ich sei gestorben!
나는 내가 아주 많은 시간을 허비한
세상에서 잊혀졌지.
그들은 오랫동안 나의 소식을 듣지 못했어,
그들은 명백하게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것이야!
Es ist mir auch gar nichts daran gelegen,
Ob sie mich für gestorben hält.
Ich kann auch gar nichts sagen dagegen,
Denn wirklich bin ich gestorben der Welt.
그들이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어도
그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네.
나 역시 그 어떤 반박도 할수 없어
나는 정말로 이 세상에서 죽었기 때문이지.
Ich bin gestorben dem Weltgetümmel
Und ruh' in einem stillen Gebiet.
Ich leb' allein in meinem Himmel,
In meinem Lieben, in meinem Lied
나는 번잡한 세상에서 죽었어
그리고 고요의 영역에서 쉬고있네
나는 홀로 내 천국 안에서,
나의 사랑 안에서, 나의 노래 안에서 살고있네.
*Gustav Mahler(1860~1911)
말러에게 음악이란?
가까이에서 말러와 깊은 우정은 나눈 브루노 발터의 증언을 통해
그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말러는 종종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음악가다. 그것이 전부를 말해준다."
말러의 생애는 그 말에 단 한점의 과장도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평생의 경험을 올곧이, 그리고 철저하게 음악으로 환원했기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는 축복을 누린 대신
그의 삶은 상당한 악조건에 놓여 있었다.
훗날 카톨릭으로 개종하긴 했지만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말러는 줄곧 열등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다.
실제로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 사회의 반유대 정서 때문에
음악 생활에서 어느 정도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그가 강박적이라 할 정도로 불변성을 거부하는 작품을 보인 것은
안정을 믿을 수없는 디아스포라라는 태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14명의 형제 중 10명이 요절한 상처도 평생 그를 지배했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유년 시절의 불행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
하지만 그는 어떠한 난관과 고통에도 음악에 대한 집중력만은
절대 잃지 않은 지독한 음악가였다.
교육열이 뜨거운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말러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
14세부터 18세까지 빈 악우협회 음악원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빈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도 수학했다.
20세에 말러는 최초의 대작인 칸타타'탄식의 노래'를 완성해
베토벤상에 응모했는데 결과는 낙선이었다.
자신의 개성이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말러는
지휘자라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한다.
1830년 린츠 근교의 바트 할에서 데뷔한 이후 말러는
30여 년 동안 공백없이 명성을 쌓아나갔다.
유수의 가극장을 거쳐 빈 궁정 가극장, 빈 필을 지휘했고,
국경을 넘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이어 뉴옥 필까지 이끌었다.
직관과 충동에 따라 서슴없이 재해석을 가한 탓에 반발을 산 적도 많지만
지휘자로서만 보면 말러의 행보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애석하고 기묘한 점은
중병에 걸린 선임 지휘자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말러 스스로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고,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 들었다.
범인이라면 지휘자로서의 생활만으로도 벅찼겠지만
말러는 자투리시간을 활용해 정력적으로 곡을 만들었다.
1901년 Alma Maria Schindler과 결혼했을 때 이미
교향곡 제5번까지 완성한 시점이었다.
알마가 낳은 두 딸은 그에게 기쁨의 원천이었고,
작곡가로서도 조금씩 인정을 받게 되어 얼마간 말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07년 말러를 위한 비극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닮아 무척 아낀 첫딸 마리아 안나가 병으로 죽은 것,
말러에게 심장 질환이 있다는 사실도 이때 밝혀졌다.
잠시 망각하고 있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다시금 말러를 지배했다.
1908년 작곡한 아홉번째 교향곡 '대지의 노래'에 번호가 아닌
표제를 붙인 것은 그만큼 그의 강박이 극심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다음에 작곡한 교향곡에 어쩔 수 없이 제9번을 붙인 말러는
1911년 발병한 후두염이 악화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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