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 정호승 창문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다 지금까지는 창문을 꼭 닫아야만 .. Poet 2017.09.30
천천히 어둠이 걷히고 - 황경신 천천히 어둠이 걷히고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캄캄한 어둠 때문이었나 길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희미한 새벽 안개 때문이었나 내 절망의 이유는 언제나 너였고 절망에서 나를 구한 것은 너의 단단하고 따뜻한 손이었다 천천히 어둠이 걷히고 모퉁이 저편에 서서 손을 흔드는 네가 보.. Poet 2017.08.14
예감 - 윤성택 예감 일기예보처럼 예감이 두렵다 오늘 비는 너의 창가에 한동안 서성일 것이다 아직 돌아 나오지 못한 길목, 가로등이 환한 아픔을 켜고 있다 너는 파문처럼 번지지만 나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것, 사랑은 이렇게 무릎걸음으로 너에게 가는 것이다 기어이 아파 보는 것.. Poet 2017.03.23
거리 - 황경신 거리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당신과 나 사이에 바람이 분다 당신과 나 사이에 창문이 있어야 당신과 내가 눈빛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창 밖에 서 있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나였으면 당신은 그저 다정한 불빛 안에서 행복해라 따뜻해라 황 경 신 ♪Brian Crain - Butterf.. Poet 2017.02.02
마지막으로 - 김연수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 Poet 2016.12.29
12월 어느 오후 - 손석철 12월 어느 오후 덜렁 달력 한 장 딸랑 까치밥 하나 펄렁 상수리 낙엽 한 잎 썰렁 저녁 찬바람 뭉클 저미는 그리움 손 석 철 Poet 2016.12.15
한 세월이 있었다 - 최승자 한 세월이 있었다 ​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 그 사막 한 가운데서 나 혼자 있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 고팠고 슬펐다 ​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 한 세월이 있었다 ​ 한 사막이 있었다 최 승 자 ♪지.. Poet 2016.12.09
눈물 - 김용택 눈물 너 없이도 가을은 오고 너 없이도 가을은 가는구나 돌아누우면 멀리 뜨는 달 사랑은 그렁그렁한 한 방울 환한 하늘의 눈물이구나 김 용 택 Poet 2016.10.29
존재하지 않았다 - 김재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흔들린다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에도 휘청거리는 나는 가는 비에 온몸 젖는다. 한때는 시작이 있는 만큼 끝 또한 있으리라 생각했던 삶 나는 이제 그 속에 아무 것도 분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령 내 몸이 병을 만나 해체된다 해도 남는 것은 한때 내가.. Poet 2016.10.26
패배에게 - 박창기 패배에게 오늘은 죽은 듯이 있어라, 패배여 ​ 진 자는 말이 없어야 하고 여린 풀꽃의 묵언을 배워야 하느니 ​ 아프다고 말하지 마라 비 그치자 머리칼 풀어 헤치고 말없이 떠나는 구름도 있지 않느냐​ 강하던 네 날개를 접어라 ​ 이미 부러진 것은 새것이 아니고는 구원받.. Poet 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