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zone &

Les Feuilles Mortes 고엽 - Yves Montand

센티멘탈 쵸이 2010. 9. 14. 01:23

 

 

 

Les Feuilles Mortes

 

 

 

Yves Montand

 

 

 

Oh! Je voudrais tant que tu te souviennes
Des jours heureux o? nous ?tions amis
En ce temps-l?, la vie ?tait plus belle
Et le soleil plus br?lant qu'aujourd'hui

오 나는 그대가 기억해주길 간절히 바래요
우리가 서로 정다웠던 그 행복한 날들을
그때 인생은 더 아름다웠고
태양도 지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죠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 ? la pelle
Tu vois, je n'ai pas oubli?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 ? la pelle
Les souvenirs et les regrets aussi
Et le vent du Nord les emporte
Dans la nuit froide de l'oubli
Tu vois, je n'ai pas oubli?
La chanson que tu me chantais.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잘 알죠?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걸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추억과 회한들 역시
그리고 북풍은 그것들을 실어 나르는군요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
당신이 내게 불러주던 그 노래가
내겐 잊혀지질 않네요

C'est une chanson qui nous ressemble
Toi qui m'aimais et je t'aimais
Et nous vivions tous deux ensemble
Toi qui m'aimais, moi qui t'aimais

그것은 우리들과도 닮은 노래였죠
나를 사랑했던 당신
당신을 사랑했던 나
우리 둘은 함께 했었는데...

Mais la vie s?pare ceux qui s'aiment
Tout doucement, sans faire de bruit
Et la mer efface sur le sable
Les pas des amants d?sunis.

그러나 인생은 조금씩 소리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바닷가에 남긴 발자국들을
파도는 말없이 지우고 가요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 ? la pelle
Les souvenir et les regrets aussi
Mais mon amour silencieux et fid?le
Sourit toujours et remercie la vie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추억과 회한들 역시
그러나 인생은 조금씩 소리도 없이

Je t'aimais tant, tu ?tais si jolie
Comment veux-tu que je t'oublie
En ce temps-l?, la vie ?tait plus belle
Et le soleil plus br?lant qu'aujourd'hui

tu ?tais ma plus douce amie
Mais je n'ai que faire des regrets
Et la chanson que tu chantais
Toujours, toujours, je l'entendrai!

C'est une chanson qui nous ressemble
Toi qui m'aimais et je t'aimais
Et nous vivions tous deux ensemble
Toi qui m'aimais, moi qui t'aimais

그것은 우리들과도 닮은 노래였죠
나를 사랑했던 당신
당신을 사랑했던 나
우리 둘은 함께 했었는데...

Mais la vie s?pare ceux qui s'aiment
Tout doucement, sans faire de bruit
Et la mer efface sur le sable
Les pas des amants d?sunis.

그러나 인생은 조금씩 소리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바닷가에 남긴 발자국들을
파도는 말없이 지우고 가요

 

 

 

 

 

 

 

가슴을 저미는 듯한 따스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마치 시를 읊듯 노래했던 이브 몽탕은

훌륭한 샹송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런 엔터테이너적인 끼를 타고난 덕에 숱한 여성들을 울렸고

아내였던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 1921~1985)의 가슴을 애타게 한 난봉꾼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아메닌 산맥이 흐르는 몬수마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나자 조국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20년대 이탈리아 전역에 휘몰아 닥친 뭇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의 횡포안에 갇힌 조국의 정치적 혼란에

자의반 타의반 도망치듯 망명자 신세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의 마르세이유로 도피했다. 

당시 불과 두 살 밖에 되지않은 그는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꼭두새벽부터 노동판에서 일해야 하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 놓였다. 

 

겨우 빵 몇조각으로 끼니를 떼워야하는 빈민자 생활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빵공장에 취직했고 그때 그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아직 엄마품이 그리웠을 그는 벅차고 힘겨운 사회생활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버터냈다.

그 와중에 그를 위안한 것은 통렬한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프레드 아스테어의 신기한 발놀림을 볼 수 있는 뮤지컬 영화였다.

 

또 한가지는 'Boum' 과 같은 노래로 프랑스 전역에서 젊은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던

샤를르 트레네의 노래를 들을수 있는 기쁨이었다.

 

 

 에디뜨 피아프

 

그는 트레네의 노래를 수도없이 불러제껴 눈을 감고도 줄줄 가사를 외울 수가 있었을만큼 그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평소 흥얼거리듯 불렀던 노래 실력은 매주 토요일마다 지방 극장이나 연주회에서 아마추어 가수로 노래를 불렀고

 18살이 되던 해엔 이미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청중들은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고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끼가 대중들을 사로잡는 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1939년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그의 불운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그는 전쟁을 피해 조선소에 들어가 힘겨운 노동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역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위해 자신의 녹녹한 음성을 들려주면서 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는 문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그들을 위해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그는 직업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1944년 그는 마르세이유를 떠나 좀 더 큰 무대인 파리로 건너와서

유럽 최고의 뮤직홀인 물랑루즈에서 기초부터 닦으며 가수의 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인, 샹송의 여왕인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를 만났다. 

건장하고 잘 생겼으며 아직 아마추어 티가 나긴하지만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이는 그를 보고

피아프는 자신의 나이를 잊은 채 그에게 빠져들었다. 

 

 

 시몬느 시뇨레

 

자신보다 6년이나 연하인 그를 위해 피아프는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헌신하고 보살폈다.

훗날 그의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불리어지게 된 것은 어쩌면

그러한 그녀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서 가능했다.

 

무명이었던 그의 인생은 그녀를 만나면서 샹송계의 가장 멋진 남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비로서 상업적으로 큰 판매고를 올리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피아프와의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아름답고 격정적인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피아프에게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어두운 별(밤의 문), 1946년>에 출연한 그는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Autumn Leave' 을 멋드러지게 불러제치며 '가을' 처럼 그녀를 떠나버렸다. 

 

이후 그는 가수로서 뿐만아니라 그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다 준 <공포의 보수, 1953년>를 시작으로

<나폴레옹, 1955년>, <5월의 첫날, 1958년>, 첫 헐리웃 진출작이 된 <사랑합시다, 1960년>와

잉그리드 버그만과 공연한 <굿바이 어게인, 1961년>,

프랑스의 대표적 스타들이 총출동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1966년>등으로 배우로서의 명성도 확고히 했다.

 

하지만 1960년 <사랑합시다>에 함께 출연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와 사랑에 빠져

한동안 아내인 시몬느 시뇨레와 불편한 관계로 지내기도 했다.

당시 시몬느가 한 유명한 말이 있었다.

 “마를린 먼로가 품에 안겨 있는데 무감각할 남자가 어디 그리 많겠어요?” 

 

 
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는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여전히 순항했다.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파리의 정사, 1967년>, 코스타 가브리스의 문제작 <제트, Z, 1969년>,
로미 슈나이더와 공연한 두 편의 드라마 <세자르와 로잘리, 1972년>, <여인의 빛, 1979년>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과 진지한 모습이 잘 어우러졌다.
 
 1986년 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과 이기심을 다룬 <마농의 샘>은
노년의 그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복이 유난히 없었다.
생전 약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두 차례 세자르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 그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1982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공연을 가장 기억 속에 담았던 그는
1991년 두번째 아내 캐롤 아미유가 지켜보는 가운데 70살의 나이로 심장마비사했다
 
 

 

그는 34년을 함께 산 시몬느 시뇨레와 파리 근교의 공동묘지에 함께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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