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

연두에 울다 - 나희덕

센티멘탈 쵸이 2015. 7. 23. 00:34

 

 

 

연두에 울다

 

 

 

 

 

떨리는 손으로 풀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나를 빛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나 희 덕

 

 

 

 

Manha De Carnaval - Astrud Gilberto 

'Poe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0) 2015.07.26
전화 - 마종기  (0) 2015.07.23
구름은 비를 데리고 - 류시화  (0) 2015.07.04
낮은 곳으로 - 이정하  (0) 2015.07.03
장마 전선 - 이외수  (0) 201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