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zone &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 - Edith Piaf

센티멘탈 쵸이 2016. 10. 16. 23:42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

 

Edith Piaf




 

 Des yeux qui font baisser les miens
Un rire qui se perd sur sa bouche
Voilà le portrait sans retouche
De l homme auquel j appartiens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Il me parle tout bas
Je vois la vie en rose
Il me dit des mots d amour
Des mots de tous les jours,
Et ça me fait quelque chose

Il est entré dans mon coeur,
Une part de bonheur
Dont je connais la cause

C est lui pour moi,
Moi pour lui dans la vie
Il me l a dit, l a juré pour la vie.
Et dès que je l aperçois
Alors je sens en moi
Mon coeur qui bat.

Des nuits d amour à plus finir
Un grand bonheur qui prend sa place
Des ennuis, des chagrins s effacent
Heureux, heureux à en mourir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Il me parle tout bas
Je vois la vie en rose
Il me dit des mots d amour
Des mots de tous les jours,
Et ça me fait quelque chose

Il es t entré dans mon coeur,
Une part de bonheur
Dont je connais la cause,
C est lui pour moi,
Moi pour lui dans la vie
Il me l a dit, l a juré pour la vie.

Et dès que je l aperçois
Alors je sens en moi
Mon coeur qui bat.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내 눈을 떨구게 만드는 눈
그의 입가에 사라져 버리는 미소
이것이 바로 내가 마음을 바친 남자의
손질하지 않은 초상화예요

그의 품에 안길 때면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여줄 때면
인생은 장미빛이 됩니다
그는 사랑의 언어들을,
일상의 언어들을 말하지요
그리고 그건 나를 감동시킵니다


행복의 한부분이
내 맘속에 들어왔어요
그 행복의 이유를 난 알아요

사는 동안 나를 위한 그이고
그를 위한 나라고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고, 영원히 맹세했었죠
그리고 그를 흘낏 보기만 해도
내속에서
심장이 콩닥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한없이 계속되는 사랑의 밤들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행복
근심들, 슬픔들은 사라지고
죽을 지경으로 행복, 행복하답니다

 

 

그의 품에 안길 때면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여줄 때면
인생은 장미빛이 됩니다
그는 사랑의 언어들을,
일상의 언어들을 말하지요
그리고 그건 나를 감동시킵니다

행복의 한부분이
내 맘속에 들어왔어요
그 행복의 이유를 난 알아요
사는 동안 나를 위한 그이고
그를 위한 나라고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고, 영원히 맹세했었죠
그리고 그를 흘낏 보기만 해도
내속에서
심장이 콩닥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본명: Edith Giovanna Gassion)는

 1915년 12월 19일 파리의 베르빌에서 태어났다.

 서커스 단원이던 아버지와 카페에서 노래했던 어머니는

그녀를 낳자마자 그녀를 거리에 내버렸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노래하던 그녀는 10살때부터

직업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1935년, 프랑스의 작은 술집 주인이었던 루이 루프레(Louis Leplee)가

 길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당시 20살이던 그녀를 가게에 데려와 노래할 수 있게 했다.

  온갖 풍파에 시달린 삶이 배어나는 그녀의 노래 실력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La Mome Piaf'(작은 참새)로 알려지기 시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뇌에 찬 목소리로

 서서히 샹송계의 스타가 돼 갔다.




1944년 카바레 <물랭루즈>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자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이브 몽탕(Yves Montand)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에디트는 그의 후원자 겸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그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

에디트는 이 곡을 불과 15분 만에 만들어 화제를 뿌렸으며,

이 노래는 나중에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불렀고,

루이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브 몽탕이 그녀만큼의 인기를 얻자, 그는 에디트를 버리고 떠나갔다.


 2차 세계 대전(1939~1945) 즈음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활동 영역을 미국 대륙으로 넓혔다.

1946년 워싱턴에서 미국 첫 투어공연을 성황리에 치루면서

 그녀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노래했다.

 이런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는

 미국에서 만난 권투선수 마셀 셀당(Marcel Cerdan).



1948년 이들은 결혼했고 그녀는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됐으며

 진실한 사랑을 체험했다. 하지만

Cerdan은 이듬해 그녀를 뒤로한 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떴다.

 1950년 그녀는 너무나 사랑했던 그에게 바치는 곡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를 만들었고,

 이 애절한 러브송은 그녀가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 가수라는 평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 곡은 이후 몇 장의 앨범에 영어로 실리기도 했으며,

우리 나라의 음악 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한 곡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 때문에 크게 상심한 그녀는

 술과 마약을 도피처로 삼기 시작했다.




1962년 그녀는 20살 이상 연하인 테오 사라포(Theo Sarapo)와 결혼했고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일하는 활력을 줬으며,

그녀는 그에 대한 사랑을 'A Quoi Ca Sert L'Amour'로 표현하기도 했다.

항상 관중들을 전율하게끔 하며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Edith.

 1963년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노래할 때 항상 검은 드레스를 입던 작은 체구의 그녀는

이브 몽땅, 죠르쥬 무스타키, 주디 갈란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의

 유명한 보컬리스트를 만들어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