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

바람 속을 걷는 법 - 이정하

센티멘탈 쵸이 2012. 6. 30. 23:11

 

 

바람 속을 걷는 법

 

 

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2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3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지, 허구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때면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4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걷던 것을 혼자 것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하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 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란 것은
하나 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이 정 하


 You -Rod Mck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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