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버린다는 것
그때는 내 마음이 아니었지요.
당신에게 먼저 떠나라 한 것,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 앞에다 이별을 놓은 것,
차가웠던 것,
그렇게 치워버렸던 것.
모두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을 만났지요.
축제 같아서 살았고,
당신이 내 빈 괄호를 채워준 것으로 힘이 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갚아야겠다고 믿었지요.
당신을 만났었지요.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한 달에 300 세제곱미터씩 녹고 있는 킬리만자로의 눈에 관한 뉴스를 같이 보면서
몇 년 뒤 그 눈이 다 녹아 없어질 거라면
그때까지 언제까지 우리 시간은 모자랄 거라 걱정했었는데......
당신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는 게
어딘가로 한없이 빨려들어간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더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일 것만 같았지요.
당신 앞에다 내 뒷모습을 놓은 것,
당신에게 받은 새장을 돌려준 것,
그렇게 끊어버리고 숨어버렸던 것.
어떡할까요.
그때는 내가 아니었는데.
바깥에 꽃이 피고 지는 것.
그 미어짐이 이토록 아픈데
어떡할까요.
이 병 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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