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기형도 꽃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기 형 도 Poet 2016.05.21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 이외수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대학생 대접을 받는다. 예전의 대학가에서는 서점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가에서는 술집이 호황을 누린다. 예전에는 호스티스들이 여대생 흉내.. Poet 2016.05.17
돌아오는 길 - 나태주 돌아오는 길 점심 모임을 갖고 돌아오면서 짬짬이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러본 집이 좋았고 만난 사람은 더 좋았다 ​ 혼자서 오래 산 사람 오래 살았지만 외로움을 잘 챙겼고 그러므로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 마주 앉아 마신 향기로운 차가 좋았고 서로 웃으며 나눈 이야기는 더욱 .. Poet 2016.05.10
기립 박수 - 성수선 기립 박수 뭐든 찬사를 보내고 싶을 때,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 때, 가슴을 툭 두드리는 감성의 시그널에 감사할 때, 망설이지 않고 일어서서 박수를 칠 수 있는 용기, 너무나 아름답다. ​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에 서슴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나. 성 수 선 Poet 2016.05.09
본색을 들키다 - 한혜영 본색을 들키다 화학비료로 키운 비트는 굵은 소금을 뿌려보면 대번에 안다 붉은 물이 빠지면 가짜다 굵은 소금 한 주먹에게 나도 본색을 들킨 적이 있다 사랑이 가짜라는 사실에 당황, 붉은 물 뚝뚝 흘리며 달아난 적이 있다 자신까지도 깜빡 속이던 색의 정체를 다 알아버린 인생이라면 .. Poet 2016.05.05
당신을 버린다는 것 - 이병률 당신을 버린다는 것 그때는 내 마음이 아니었지요. 당신에게 먼저 떠나라 한 것,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 앞에다 이별을 놓은 것, 차가웠던 것, 그렇게 치워버렸던 것. 모두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을 만났지요. 축제 같아서 살았고, 당신이 내 빈 괄호를 채워준 것으로 힘이 났고, 그래서 조.. Poet 2016.04.17
걷다 - 신광철 걷다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간다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신 광.. Poet 2016.04.16
침묵하는 연습 - 유안진 침묵하는 연습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 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들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 Poet 2016.04.06
오후 - 유안진 오후 천천히 담담하게 조용히 객쩍고 미안하게 이런 말들과 더 어울리는 오후 그래서 오후가 더 길다 그런 오후를 살고 있다 나는 지는 해가 더 처절하고 더 장엄하고 더 할말 많고 더 고독하지만 그래서 동치미 국물보다 깊고 깊은 맛이여 그런 오후를 살고 싶다 나는 유 안 진 Poet 2016.03.20